[기고]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이 성공하려면

  • 입력 : 2017.09.13 10:04:14     수정 : 2017.10.27 10: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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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금융정책의 핵심 가치로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이 제시됐다. '생산적 금융'이란 지급·결제, 대출자와 차입자 간 매칭, 개인 자산관리, 위험관리 기능 등 금융의 본질적 기능 회복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한정된 고객의 돈이 위험한 부분이 아닌 꼭 필요한 곳에 흘러가도록 해 금융이 더 이상 경제시스템 불안을 야기하지 않고 경제의 역동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포용적 금융'은 말 그대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금융을 말한다. 금융시스템을 재설계해 금융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데 기여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금융정책은 다른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금융시장 안정과 경제회복 기반 마련, 금융시스템 선진화 및 경쟁력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와 함께 미소금융 등에 대해서도 정책적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금융의 본질적 기능을 회복하고 취약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이전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이라는 핵심 가치가 전면에 등장하고 금융시스템의 패러다임적 전환까지 요구되고 있는 것은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 금융시스템으로는 4차 산업혁명 등에 대응하기가 어렵고, 취약계층의 경제적 부담 가중 등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금융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현 상황에서 정부의 금융정책 방향은 매우 바람직해 보인다. 그런데 금융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 가지 의문과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든다. 과연 소득 양극화와 가계대출 확대가 금융만의 잘못일까? 금융의 탐욕적이고 비윤리적 인센티브 체계가 부동산 대출 위주의 과도한 부채를 증가시켜 금융위기를 가져왔으며 이에 대한 비용을 납세자가 부담함에 따라 금융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는 것이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면 분석이 이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가야 한다. 왜 사람들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고서라도 부동산에 투자를 하려 했을까?

로버트 라이시 하버드대 교수는 그 해답을 소득분배 악화에서 찾는다. 라이시 교수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기술 도입 등 경제 환경이 변하면 이에 적응하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 간 소득 격차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소득이 하락한 그룹은 대출을 늘리게 된다. 대출을 늘리는 이유는 첫째, 소득 하락 이전과 같은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소득 하락을 만회하고 대출 상환 자금을 마련하고자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왜 부동산이냐 하면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대출을 통한 소비와 부동산 투자 확대로 상당 기간 실물경기와 부동산경기가 좋아지고 이는 자기 확신적 믿음을 강화해 대출을 통한 부동산 투자를 더욱 조장하는데, 대출 확대가 한계에 이르면 거품이 붕괴되고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금융위기 이후 채무자는 추가 대출이 어려워 보유했던 부동산을 잃게 되지만, 채권자는 이를 견뎌낼 여력이 있고 시간이 경과해 금융위기가 진정되면 채권의 일정 부분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간의 양극화가 금융위기 이후 더욱 심화된다.

이 논리가 맞는다면 금융은 소득 양극화와 가계대출 확대의 주범이라기보다는 이를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금융은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비금융 영역에서 파이가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으면 금융위기의 공범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이 성공하려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업지배구조 개선, 복지지출 확대 등 소득분배 개선을 위한 모든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실제 미국의 경우 대공황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직전에 최고세율이 가장 낮았고 소득분배가 가장 악화돼 있었으며, 최고세율이 가장 높았고(한계세율이 90%를 상회) 소득분배가 가장 개선되었던 1960년대 10년간 장기 호황을 누렸다.

[한기정 보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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